시광교리문답 소개
이정규 (시광교회)
시광교리문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문답은 77문으로 이루어진 교리교육서(Catechism)입니다. 그리고 고대의 많은 교리교육서가 그렇듯, 질문을 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간결하게 소개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 교리교육서는 기존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시광교회는 개신교 장로교회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받아들입니다. 이 문서는 “개신교의 교리를 놀랍도록 자세히 강해한 문서”일 뿐 아니라 “정확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사용한 문서지요.1)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은 교파/교단의 신조의 역할을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문서들의 가르침을 마음을 다하여 받아들입니다. 더불어 개혁주의 신앙의 장로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과 도르트 신조,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문서들은 제 신앙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시광교회의 모든 설교와 교육의 든든한 뼈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더 이상의 신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당신의 믿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신조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시광교리문답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시광교리문답은, 신조의 기능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이 아닙니다.
둘째, 이 교리교육서는 보충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교리문답서에 더하여 시광교리문답을 쓴 것일까요? 이 단어는 ‘가르치다’는 뜻의 그리스어 ‘카테케오’(κατηχέω)에서 유래했는데,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가르치는 일종의 교리교육교재입니다.2)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교리교육의 역사는 이미 초대교회의 세례교육 교재부터 존재했지요(예를 들어, A.D. 215년의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하지만 이러한 교육방식이 유행을 탄 것은 종교개혁 이후부터입니다.3) 제임스 T. 데니슨이 편집한 16-17세기의 신앙고백과 교리교육교재는 127개나 되지요. 여기에는 개신교측의 교리문답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측의 교리문답들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기에 교리문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걸까요? 당연히 종교개혁 때문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칭의를 비롯한 성경 교리를 재발견함으로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고, 그 과정 중에 사람들이 복음적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로마가톨릭의 오류를 교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정 작업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문답식의 교리교육을 사용하는 것이었지요. 루터가 소교리문답을 만들 때, 목사들에게 권면했던 내용을 보십시오.
신앙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꾸준히 알리고 경고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것이 바른 먹거리이고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떤 도시에서 살려면 믿음 좋은 신자든 악당이든 상관없이 그 도시의 법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지켜야 제대로 그곳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4)
이러한 관점으로 16-17세기의 교리문답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로마가톨릭의 오류에 대항하여 성도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모든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은 ‘대항적인 선포’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신경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사도신경은 범신론과도 다르고, 단신론과도 다르며, 다신론과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신을 제시합니다. 역사학자 톰 홀랜드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고대의 다른 종교에서는) 위대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람들, 가령 정복자, 영웅, 왕 들에게 신성이 부여되었다. 그런 위대함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적들에게 고문을 가할 수 있는 권력, 산속의 바위에 적들을 못 박는 권력, 적들을 거미로 변신시켜 버리는 권력, 세상을 정복한 후에 적들을 눈멀게 하고 십자가형을 내리는 권력을 의미했다. 그러니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로마 세계 전역의 대다수 사람들이 볼 때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기괴한 일이었다. 그것을 최고로 불쾌하게 여긴 사람들은 어떤 특정 민족이었는데, 바로 예수의 동포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통치자인 로마인들과는 다르게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한 분의 영원한 신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천지를 창조한 그 신은 가장 높으신 하느님, 만물의 주재, 지상의 주인으로 높이 받들어졌다. 제국들도 그분의 명령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고 산들도 그분 앞에서는 왁스처럼 녹아 버린다. 이런 신들 중의 신인 분에게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노예의 운명을 그대로 겪으면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죽어 갔다는 사실은, 대다수 유대인이 볼 때 경악스러울 뿐만 아니라 극도로 혐오스러운 얘기였다. 유대인들의 기본 전제를 그처럼 충격적으로 전복시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5)
즉, 사도신경이 그려내는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하나님은 정말 기괴하고 이상한 신이었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 사람이 되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과 그분을 보내신 선하신 아버지. 그리고 교회 안에 임하셔서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시고 교제하게 하시는 성령님은 당대로서는 얼마나 충격적인 신이었을까요? 신이 이토록 자신을 낮추어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하다니! 이 교리는 자연스럽게 사랑의 윤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기독교 윤리 중 사랑, 용서, 겸손, 섬김, 인권, 약자들을 돌보는 것, 자족 등의 윤리들은 바로 신론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지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측면에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조들은 당시 시대를 향한 저항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문답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개혁파 교리문답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삼위일체나 기독론보다는 구원론과 교회론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는 것입니다.6) 왜 그랬을까요?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복음을 가르치고 개신교인이 되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서, 복음적인 개신교인, 즉 신실한 신자가 되기에 당대 최고의 걸림돌이었던 로마가톨릭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지요. 실제로 하이델베르크,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도르트 신조 등은 최고 수준의 교리문답임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소교리문답의 기독론은 칼케돈 신조가 말해주는 수준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시기의 교리문답, 즉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이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가르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음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교리문답의 내용들을 청중들이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 청중들에게 로마가톨릭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80문은 “주의 만찬과 로마 교회의 미사는 어떻게 다릅니까?”입니다. 이 문답을 해설하기 위해서는 로마가톨릭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현대에도 그럴까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복음적 신앙을 갖게 되는데의 가장 큰 문제는 로마가톨릭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속주의이지요. 사람들은 세속주의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해내지는 못하지만, 세속주의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치관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교육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광고, SNS, 문학, 영화,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세계관을 주입받고 있지요.
이슈 | 설명 |
정체성 | 나의 정체성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한다. |
진리 |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절대진리는 없다. 따라서 특정 진리를 주장하며 다른 사상을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용의 정신에 위배된다. |
고통 | 고통은 무의미한 것이며 따라서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
해결 방법 | 기술과 과학은 모든 문제를 차차 해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터스텔라의 신학을 보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
역사 | 역사가 진행될수록 인류는 진보하고, 종교는 퇴보하며, 사회는 더 나아진다. |
세상의 문제 | 세상의 문제는 ‘그들’이다. |
행복 | 행복은 고통이 적은 것이며, 미래가 안락한 것이다. |
권위 | 권위는 없을수록 좋다. |
이 모든 것들은 강력한 교리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교리에 대항하지 못하고 있지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저항해서 다음의 메시지를 굳건히 선포해야 합니다.
이슈 | 메시지 |
정체성 | 우리는 창조되었고,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기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
진리 | 절대적인 진리가 있고, 인간은 그 진리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진리가 내려왔다. 은혜로 다가온 진리를 인간이 믿기에, 인간은 관용할 수 있다. |
고통 | 복음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고통에 인내하게 하고, 고통을 맞서게 하며, 이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
해결 방법 | 기술과 과학은 하나님의 은혜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 깊고 특별한 방식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
역사 | 역사 가운데에서의 인간의 노력들은 인간을 개선시키지만,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인간 내면의 자기중심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구원이 필요하다. |
세상의 문제 | 세상의 문제는 ‘나’이다. |
행복 | 행복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으로부터의 궁극적 인정과 관계로부터 오며, 이는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진다. |
권위 | 권위는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가 권위가 되거나, 압제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둘 다 압제자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권위가 필요하다. |
어떻게 선포해야 하는가? 제임스 패커는 교리교육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사실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세계관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다. 이런 점에서 문화 자체도 일종의 요리 문답에 해당하는 셈이다. 문화라는 요리 문답이 영향을 미치는 통로나 과정은 매우 다양하다. 오늘날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성장한 젊은이의 경우 전(全)방위적인 문화적 압박 아래 놓여 있다. 그런 모든 세력이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온갖 종류의 대중 매체, 학교와 교육 지도자들이 신봉하는 가치 교육, 쉴 새 없이 변하는 도덕관을 강화하고 법제화하는 정치 세력,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여지없이 파고드는 속된 가치관과 세계관 등 여러 요인이 압박한다. 이런 요인들이 가치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교리 학습자가 그런 요인들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종종 철저한 신봉자가 되기도 하는 또래 집단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런 세력들에 대항할 수 있을까?... 문화적으로 적절하고, 성경에 충실하고, 전인적이고, 의도적인 교리 교육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7)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대항문화를 형성하는 교리문답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광교리문답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교리문답은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문답에는 없는, 다음의 질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4 - 절대적 진리라니,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절대 진리는 없는 것 아닌가요?
문12 - 사랑의 하나님이 진노하시다니 그것은 부당한 것 아닙니까?
문20 –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다니, 그런 기적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변증적 답변을 요구합니다. 이 외에도 시광교리문답은 여러 질문과 답에서 현대의 문제들을 다루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 답들은 한결같이 종교개혁 시대의 주요한 교리문답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라 확신합니다.
셋째, 이 교리문답을 활용하는 법을 제안해 보겠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같이 문답을 읽는 것이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려면 이 내용들로 함께 스터디를 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면 이 내용을 사용해서 설교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총 77문으로 구성된 이 교리교육서를, 저는 1년 안에 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구성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주차 | 구성 | 문답 |
1 | 서론 | 문1 – 우리 인생의 유일한 희망은 무엇입니까? |
2 | 서론 | 문2 – 이 희망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더 알아야 합니까? 문3 – 이 모든 진리를 우리는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문4 – 절대적 진리라니,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절대 진리는 없는 것 아닌가요? |
3 | 1부 | 문5 –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4 | 문6 –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니, 하나님은 세 분이신겁니까? |
5 | 문7 – 하나님은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나요? 문8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니,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
6 | 문9 –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문10 – 인간은 이 명령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
7 | 문11 –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문12 – 사랑의 하나님이 진노하시다니 그것은 부당한 것 아닙니까? |
8 | 문13 – 비참함은 무엇입니까? 문14 – 소외는 무엇입니까? |
9 | 문15 – 그렇게 비참하고 소외되었다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보다는 나은데요? 문16 – 일반은혜를 통해 비참과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
10 | 문17 – 하나님께서는 그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까? 문18 – 구속자는 어떠한 분이십니까? |
11 | 문19 – 구속자는 어떻게 인간이 되셨습니까? 문20 –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다니, 그런 기적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
12 | 문21 – 구속자는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까? |
13 | 문22 – 특히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
14 | 문23 – 그 결과로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15 | 문24 – 예수님은 이후에 어떻게 되셨습니까? 문25 –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
16 | 2부 | 문26 –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문27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구원을 받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
17 | 문28 – 성령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
18 | 문29 – 믿음은 무엇입니까? |
19 | 문30 – 회개는 무엇입니까? |
20 | 문31 – 이렇게 믿음과 회개로 하나님께 반응한 사람은 어떤 유익을 얻습니까? 문32 – 의롭다 하심은 무엇입니까? |
21 | 문33 – 자녀로 입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
22 | 문34 –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
23 | 문35 – 이러한 가르침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냉담해지고 방종하지 않겠습니까? |
24 | 3부 | 문36 –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문37 – 그분의 명령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25 | 문38 – 십계명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문39 – 첫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26 | 문40 – 둘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27 | 문41 – 셋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28 | 문42 – 넷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29 | 문43 – 다섯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문44 – 인간 권위는 불완전하고 악한데도 그들을 따라야 합니까? |
30 | 문45 – 여섯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31 | 문46 – 일곱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문47 – 이것은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닙니까? |
32 | 문48 - 여덟 번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33 | 문49 – 아홉 번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34 | 문50 – 열 번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35 | 문51 - 십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
36 | 문52 – 은혜의 수단이란 무엇입니까? 문53 –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합니까? |
37 | 문54 – 성례는 무엇입니까? 문55 – 세례는 무엇입니까? |
38 | 문56 – 성찬은 무엇입니까? |
39 | 문57 – 지역교회는 무엇입니까? 문58 – 반드시 지역교회에 소속되어야 한다니, 그것은 압제 아닙니까? 문59 – 직분자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합니까? |
40 | 문60 – 기도는 무엇입니까? 문61 –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무엇입니까? |
41 | 문62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
42 | 문63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
43 | 문64 -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
44 | 문65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
45 | 문66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
46 | 문67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문68 – 하지만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야 한다니, 꼭 그래야만 합니까? |
47 | 문69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문70 – 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주어는 ‘나’가 아닌 ‘우리’입니까? |
48 | 문71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문72 – 정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실까요? 나는 죄를 짓고, 삶에는 고통이 있는데도 말입니까? 문73 – 고통은 쓸모없는 것 아니었나요? 피할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
49 | 문74 – 이 세상의 끝에는 어떤 일이 있게 됩니까? 문75 –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을 지옥으로 던지시는 것은 나쁜 것 아닙니까? |
50 | 문76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문77 – 이 희망을 가진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넷째, 이 교리문답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저는 이 교리문답에 1.0 버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교리문답을 세상에 공개함으로 제가 바라는 것은,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리문답이 개선되고 보완되는 것입니다. 향후 다양한 방식으로 피드백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그 피드백을 반영하며 개선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시광교리문답을 사용한 어린이 버전도 만들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더욱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시도가 더 많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탁월한 신학자들과 목회자 분들이 모여서 현대의 문제를 다루는 더 많은 교리문답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시광교회는 시광교리문답을 버리고 새로 나온 좋은 교리문답을 기꺼이 사용할 것입니다.
나가며
이상으로 간단히 이 교리문답에 대한 변명을 마칩니다. 이 교리문답의 주제는 무엇인지, 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각 내용의 세부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직접 읽으시면서 파악하실 수 있으니까요. 시광교리문답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시광교회 이메일(seetheglory1@naver.com)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드릴 분들을 언급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교리문답을 신학적으로 검토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웅(총신대 조직신학), 우병훈(고신대 교의학), 안상혁(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김재윤(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이충만(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님들과 이재국(시광교회 협동, 역사신학) 박사님께서 내용을 살펴주셨습니다. 특히 우병훈 교수님과 안상혁 교수님은 대단히 꼼꼼하게 교리문답 전체를 검토해 주시고, 발전적인 제안을 주셨습니다. 이분들의 섬김 덕에 교리문답이 더 정교해 졌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글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저에게만 있습니다.
또한 김동석 목사(시광교회)가 증거구절 작업에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시광교회 교역자들이 이 글을 읽어주었고, 유익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아내에게도 감사합니다. 아내 역시 이 글을 읽어주고 유익한 제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제 삶에 지속적 사랑을 공급해 줌으로 격려와 힘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 싱클레어 퍼거슨, 『온전한 그리스도』, 정성묵 옮김, (서울: 디모데, 2018), p. 12. 팀 켈러의 추천의 글에서.
2. David F. Wright, “Catechism,” in Encyc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Louisville, KY;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2), p. 59.
3. F. L. Cross and Elizabeth A. Livingstone, eds.,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301.
4. 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해설』, 최주훈 옮김 (서울: 복 있는 사람, 2018), pp. 32-33. 필자가 강조.
5. 톰 홀랜드, 『도미니언』, 이종인 옮김 (서울: 책과함께, 2020), p. 18.
6.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그럼에도 놀라운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7. 제임스 패커, 게리 패럿, 『복음에 뿌리를 내려라』, 조계광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0), pp. 259-260.
시광교리문답 소개
이정규 (시광교회)
시광교리문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문답은 77문으로 이루어진 교리교육서(Catechism)입니다. 그리고 고대의 많은 교리교육서가 그렇듯, 질문을 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간결하게 소개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 교리교육서는 기존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시광교회는 개신교 장로교회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받아들입니다. 이 문서는 “개신교의 교리를 놀랍도록 자세히 강해한 문서”일 뿐 아니라 “정확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사용한 문서지요.1)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은 교파/교단의 신조의 역할을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문서들의 가르침을 마음을 다하여 받아들입니다. 더불어 개혁주의 신앙의 장로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과 도르트 신조,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문서들은 제 신앙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시광교회의 모든 설교와 교육의 든든한 뼈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더 이상의 신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당신의 믿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신조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시광교리문답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시광교리문답은, 신조의 기능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이 아닙니다.
둘째, 이 교리교육서는 보충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교리문답서에 더하여 시광교리문답을 쓴 것일까요? 이 단어는 ‘가르치다’는 뜻의 그리스어 ‘카테케오’(κατηχέω)에서 유래했는데,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가르치는 일종의 교리교육교재입니다.2)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교리교육의 역사는 이미 초대교회의 세례교육 교재부터 존재했지요(예를 들어, A.D. 215년의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하지만 이러한 교육방식이 유행을 탄 것은 종교개혁 이후부터입니다.3) 제임스 T. 데니슨이 편집한 16-17세기의 신앙고백과 교리교육교재는 127개나 되지요. 여기에는 개신교측의 교리문답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측의 교리문답들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기에 교리문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걸까요? 당연히 종교개혁 때문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칭의를 비롯한 성경 교리를 재발견함으로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고, 그 과정 중에 사람들이 복음적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로마가톨릭의 오류를 교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정 작업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문답식의 교리교육을 사용하는 것이었지요. 루터가 소교리문답을 만들 때, 목사들에게 권면했던 내용을 보십시오.
이러한 관점으로 16-17세기의 교리문답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로마가톨릭의 오류에 대항하여 성도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모든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은 ‘대항적인 선포’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신경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사도신경은 범신론과도 다르고, 단신론과도 다르며, 다신론과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신을 제시합니다. 역사학자 톰 홀랜드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즉, 사도신경이 그려내는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하나님은 정말 기괴하고 이상한 신이었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 사람이 되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과 그분을 보내신 선하신 아버지. 그리고 교회 안에 임하셔서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시고 교제하게 하시는 성령님은 당대로서는 얼마나 충격적인 신이었을까요? 신이 이토록 자신을 낮추어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하다니! 이 교리는 자연스럽게 사랑의 윤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기독교 윤리 중 사랑, 용서, 겸손, 섬김, 인권, 약자들을 돌보는 것, 자족 등의 윤리들은 바로 신론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지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측면에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조들은 당시 시대를 향한 저항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문답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개혁파 교리문답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삼위일체나 기독론보다는 구원론과 교회론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는 것입니다.6) 왜 그랬을까요?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복음을 가르치고 개신교인이 되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서, 복음적인 개신교인, 즉 신실한 신자가 되기에 당대 최고의 걸림돌이었던 로마가톨릭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지요. 실제로 하이델베르크,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도르트 신조 등은 최고 수준의 교리문답임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소교리문답의 기독론은 칼케돈 신조가 말해주는 수준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시기의 교리문답, 즉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이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가르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음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교리문답의 내용들을 청중들이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 청중들에게 로마가톨릭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80문은 “주의 만찬과 로마 교회의 미사는 어떻게 다릅니까?”입니다. 이 문답을 해설하기 위해서는 로마가톨릭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현대에도 그럴까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복음적 신앙을 갖게 되는데의 가장 큰 문제는 로마가톨릭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속주의이지요. 사람들은 세속주의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해내지는 못하지만, 세속주의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치관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교육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광고, SNS, 문학, 영화,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세계관을 주입받고 있지요.
이슈
설명
정체성
나의 정체성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한다.
진리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절대진리는 없다. 따라서 특정 진리를 주장하며 다른 사상을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용의 정신에 위배된다.
고통
고통은 무의미한 것이며 따라서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해결
방법
기술과 과학은 모든 문제를 차차 해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터스텔라의 신학을 보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역사
역사가 진행될수록 인류는 진보하고, 종교는 퇴보하며, 사회는 더 나아진다.
세상의
문제
세상의 문제는 ‘그들’이다.
행복
행복은 고통이 적은 것이며, 미래가 안락한 것이다.
권위
권위는 없을수록 좋다.
이 모든 것들은 강력한 교리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교리에 대항하지 못하고 있지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저항해서 다음의 메시지를 굳건히 선포해야 합니다.
이슈
메시지
정체성
우리는 창조되었고,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기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진리
절대적인 진리가 있고, 인간은 그 진리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진리가 내려왔다. 은혜로 다가온 진리를 인간이 믿기에, 인간은 관용할 수 있다.
고통
복음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고통에 인내하게 하고, 고통을 맞서게 하며, 이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해결
방법
기술과 과학은 하나님의 은혜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 깊고 특별한 방식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역사
역사 가운데에서의 인간의 노력들은 인간을 개선시키지만,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인간 내면의 자기중심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구원이 필요하다.
세상의
문제
세상의 문제는 ‘나’이다.
행복
행복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으로부터의 궁극적 인정과 관계로부터 오며, 이는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진다.
권위
권위는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가 권위가 되거나, 압제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둘 다 압제자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권위가 필요하다.
어떻게 선포해야 하는가? 제임스 패커는 교리교육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대항문화를 형성하는 교리문답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광교리문답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교리문답은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문답에는 없는, 다음의 질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4 - 절대적 진리라니,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절대 진리는 없는 것 아닌가요?
문12 - 사랑의 하나님이 진노하시다니 그것은 부당한 것 아닙니까?
문20 –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다니, 그런 기적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변증적 답변을 요구합니다. 이 외에도 시광교리문답은 여러 질문과 답에서 현대의 문제들을 다루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 답들은 한결같이 종교개혁 시대의 주요한 교리문답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라 확신합니다.
셋째, 이 교리문답을 활용하는 법을 제안해 보겠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같이 문답을 읽는 것이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려면 이 내용들로 함께 스터디를 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면 이 내용을 사용해서 설교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총 77문으로 구성된 이 교리교육서를, 저는 1년 안에 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구성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주차
구성
문답
1
서론
문1 – 우리 인생의 유일한 희망은 무엇입니까?
2
서론
문2 – 이 희망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더 알아야 합니까?
문3 – 이 모든 진리를 우리는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문4 – 절대적 진리라니,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절대 진리는 없는 것 아닌가요?
3
1부
문5 –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4
문6 –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니, 하나님은 세 분이신겁니까?
5
문7 – 하나님은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나요?
문8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니,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6
문9 –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문10 – 인간은 이 명령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7
문11 –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문12 – 사랑의 하나님이 진노하시다니 그것은 부당한 것 아닙니까?
8
문13 – 비참함은 무엇입니까?
문14 – 소외는 무엇입니까?
9
문15 – 그렇게 비참하고 소외되었다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보다는 나은데요?
문16 – 일반은혜를 통해 비참과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10
문17 – 하나님께서는 그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까?
문18 – 구속자는 어떠한 분이십니까?
11
문19 – 구속자는 어떻게 인간이 되셨습니까?
문20 –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다니, 그런 기적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12
문21 – 구속자는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까?
13
문22 – 특히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14
문23 – 그 결과로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5
문24 – 예수님은 이후에 어떻게 되셨습니까?
문25 –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16
2부
문26 –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문27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구원을 받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17
문28 – 성령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18
문29 – 믿음은 무엇입니까?
19
문30 – 회개는 무엇입니까?
20
문31 – 이렇게 믿음과 회개로 하나님께 반응한 사람은 어떤 유익을 얻습니까?
문32 – 의롭다 하심은 무엇입니까?
21
문33 – 자녀로 입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22
문34 –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23
문35 – 이러한 가르침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냉담해지고 방종하지 않겠습니까?
24
3부
문36 –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문37 – 그분의 명령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25
문38 – 십계명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문39 – 첫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6
문40 – 둘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7
문41 – 셋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8
문42 – 넷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9
문43 – 다섯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문44 – 인간 권위는 불완전하고 악한데도 그들을 따라야 합니까?
30
문45 – 여섯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1
문46 – 일곱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문47 – 이것은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닙니까?
32
문48 - 여덟 번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3
문49 – 아홉 번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4
문50 – 열 번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5
문51 - 십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36
문52 – 은혜의 수단이란 무엇입니까?
문53 –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합니까?
37
문54 – 성례는 무엇입니까?
문55 – 세례는 무엇입니까?
38
문56 – 성찬은 무엇입니까?
39
문57 – 지역교회는 무엇입니까?
문58 – 반드시 지역교회에 소속되어야 한다니, 그것은 압제 아닙니까?
문59 – 직분자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합니까?
40
문60 – 기도는 무엇입니까?
문61 –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무엇입니까?
41
문62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42
문63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43
문64 -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44
문65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45
문66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46
문67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문68 – 하지만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야 한다니, 꼭 그래야만 합니까?
47
문69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문70 – 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주어는 ‘나’가 아닌 ‘우리’입니까?
48
문71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문72 – 정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실까요? 나는 죄를 짓고, 삶에는 고통이 있는데도 말입니까?
문73 – 고통은 쓸모없는 것 아니었나요? 피할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49
문74 – 이 세상의 끝에는 어떤 일이 있게 됩니까?
문75 –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을 지옥으로 던지시는 것은 나쁜 것 아닙니까?
50
문76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문77 – 이 희망을 가진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넷째, 이 교리문답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저는 이 교리문답에 1.0 버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교리문답을 세상에 공개함으로 제가 바라는 것은,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리문답이 개선되고 보완되는 것입니다. 향후 다양한 방식으로 피드백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그 피드백을 반영하며 개선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시광교리문답을 사용한 어린이 버전도 만들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더욱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시도가 더 많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탁월한 신학자들과 목회자 분들이 모여서 현대의 문제를 다루는 더 많은 교리문답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시광교회는 시광교리문답을 버리고 새로 나온 좋은 교리문답을 기꺼이 사용할 것입니다.
나가며
이상으로 간단히 이 교리문답에 대한 변명을 마칩니다. 이 교리문답의 주제는 무엇인지, 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각 내용의 세부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직접 읽으시면서 파악하실 수 있으니까요. 시광교리문답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시광교회 이메일(seetheglory1@naver.com)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드릴 분들을 언급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교리문답을 신학적으로 검토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웅(총신대 조직신학), 우병훈(고신대 교의학), 안상혁(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김재윤(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이충만(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님들과 이재국(시광교회 협동, 역사신학) 박사님께서 내용을 살펴주셨습니다. 특히 우병훈 교수님과 안상혁 교수님은 대단히 꼼꼼하게 교리문답 전체를 검토해 주시고, 발전적인 제안을 주셨습니다. 이분들의 섬김 덕에 교리문답이 더 정교해 졌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글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저에게만 있습니다.
또한 김동석 목사(시광교회)가 증거구절 작업에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시광교회 교역자들이 이 글을 읽어주었고, 유익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아내에게도 감사합니다. 아내 역시 이 글을 읽어주고 유익한 제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제 삶에 지속적 사랑을 공급해 줌으로 격려와 힘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 싱클레어 퍼거슨, 『온전한 그리스도』, 정성묵 옮김, (서울: 디모데, 2018), p. 12. 팀 켈러의 추천의 글에서.
2. David F. Wright, “Catechism,” in Encyc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Louisville, KY;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2), p. 59.
3. F. L. Cross and Elizabeth A. Livingstone, eds.,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301.
4. 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해설』, 최주훈 옮김 (서울: 복 있는 사람, 2018), pp. 32-33. 필자가 강조.
5. 톰 홀랜드, 『도미니언』, 이종인 옮김 (서울: 책과함께, 2020), p. 18.
6.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그럼에도 놀라운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7. 제임스 패커, 게리 패럿, 『복음에 뿌리를 내려라』, 조계광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0), pp. 259-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