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al Epi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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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광교회 성도들을 위한 목회서신입니다. 주로 이정규 목사가 글을 쓰지만, 교회의 다른 교역자들도 다양한 글감을 가지고 소통하는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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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원 교회 신학 비전_박현진 목사

관리자
2025-03-12
조회수 212

인덕원 교회(가칭) 신학 비전

 

박현진 목사

 

 

1. 신학 비전이란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하는 답변은 주로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교리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개혁교회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존중하는 교회야”와 같은 답변을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실천과 실용을 강조하는 특정 사고방식, 프로그램 등입니다. “우리는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야” “우리는 전 세대가 하나의 말씀을 듣고, 하나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야” “우리는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소그룹이 좋은 교회야”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 설교를 하는 교회야”와 같은 답변이 좋은 예시입니다.

 

팀 켈러 목사는 『센터 처치』에서 우리 모두는 교리적 기초(doctrinal foundation)라는 것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신학적 신념의 집합이라 말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특정한 사역 형태(forms of ministry)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1] 그런데 팀 켈러 목사는 교리 기초가 항상 특정한 사역 형태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을 보고, 신학 비전의 차이 때문이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시광교회 교리 기초는 개혁주의 신학입니다. 시광교회는 개혁교회가 존중하는 주요 신앙고백서를 따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한국에서 개혁교회를 표방하는 교회들과 차이가 없죠. 하지만 시광교회는 1부 예배와 2부 예배의 예배 음악을 다르게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가르치는 대신 <시광 교리문답>을 가르칩니다. 사역 형태가 다른 것입니다. 교리 기초는 같은데 사역 형태가 다른 이유는 시대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 목사는 신학 비전은 교리 기초에서 자라는 것이지만, 암묵적 또는 명시적 문화 이해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사역에 대한 우리의 결정과 선택에 가장 밀접한 인과관계를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즉, 신학 비전이란 복음을 충실하게 재진술한 문장으로서, 역사의 한 시점에서, 그리고 특정한 문화 속에서 삶과 사역과 선교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할지에 대한 풍성한 시사점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하죠.[2]

 

16세기 칼빈이 목회한 제네바 교회와 21세기 교역자들이 섬기는 시광교회는 교리적 토대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신학 비전은 다릅니다. 그래서 당연히 사역 형태도 다르죠. 시광교회는 신학 비전에서 팀 켈러 목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지만,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뉴욕과 서울이 다르기 때문이고, 리디머 교회와 시광교회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향후 개척하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척하는 교회는 시광교회와 분명히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연속성도 있을 것입니다. 그 차이는 신학 비전으로 나타납니다.

 

신학 비전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복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 복음을 현대인의 마음에 다가오도록 제시할 것인가?

■ 이 사회의 문화는 어떤 모습이며, 우리는 문화에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대항하면서 소통할 것인가?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도심, 외곽, 신도시, 시골 등) 이 지역의 공공 영역과 문화 생산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그리스도인이 참여할 것인가?

■ 교회 안의 다양한 사역들(말씀, 봉사, 공동체, 교육 등)을 어떻게 상호 연결할 것인가?

■ 우리 교회는 얼마나 혁신적이며, 얼마나 전통적이어야 하는가?

■ 우리 교회는 도시와 지역 안에서 다른 교회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 기독교 진리를 세상에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3]

 

이 글은 “2025년 인덕원 지역으로 개척하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학 비전으로 답하고, 교회 개척 참여를 독려하고자 쓴 글입니다.

 


2. 도시 속 복음, 복음 중심 공동체, 공동체가 섬기는 도시 그리고 예배

 

시광교회 신학 비전은 <시광교회 비전선언문>[4]에 나타납니다. 이 문서는 예배, 복음 중심, 마음을 통한 변화, 복음 중심 공동체, 도시를 섬기기, 복음 전도, 비신자에 대한 환영, 교회 개척이라는 핵심 가치 8가지를 통해 시광교회가 품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개척하는 교회는 기존 시광교회와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띨 것이기에, <시광교회 비전선언문>을 토대로 새롭게 개척하는 교회의 신학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합니다.

 

2.1 도시 속 복음


2.1.1. 시광교회와 같은 점

 

모든 교회는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복음’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는 표현과 복음을 전하는 표현을 혼재하여 사용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든 하나님 말씀이 복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해야 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 영향을 주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복음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바로잡으셨으며, 궁극으로는 세상 모든 죄의 결과를 없애실 것임을 선포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 사고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브라이언 채플 목사는 『은혜가 이끄는 삶』에서 말합니다.

 

당신이 일을 잘 해내면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승진을 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잘하면 사랑을 받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한 일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와 하나님 및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기초를 그렇게 추론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귀하게 여기시고 아름답게 보시지만, 그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진 않는다. 우리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5]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과 관련한 질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행동과 지위, 성취, 의지 등을 동원하여 답변합니다. 만약 어떤 이에게 “당신은 어떤 그리스도인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경건하지 못하고 형편없는 그리스도인이에요.” 이 답변이 정직한 답변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답변은 아닙니다. 이 답변에는 내가 한 일이 있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은 없습니다. 복음이 없는 것이죠.

 

반면에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하고 자신을 정의한다고 해봅시다. 이 답변은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누림에서 나오는 답변인지는 조금 더 확인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죄를 단순히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해보죠. 행동에 집중한 죄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이해의 결과, 분명 구원받았다고 믿겠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자비를 간청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그 믿음은 선물이 아니라, 나의 행동과 성취입니다.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토대로 설교, 교육, 교제마다 기쁜 소식을 전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개척하는 교회의 핵심 가치가 ‘복음’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이해가 성도들의 정체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개척하는 교회는 팀 켈러 목사가 말하듯 우리 삶의 문제는 대부분 복음에 대한 바른 정립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교회 안의 병리적 증상들과 개인의 삶에서 보이는 죄악의 양상들은 궁극적으로 복음의 깊은 의미들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6] 이와 같은 이유로 개척하는 교회의 모든 사역은 복음이 중심이 되며, 복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1.2. 왜 ‘도시 속’ 복음인가

 

개척하는 교회의 신학 비전을 그냥 ‘복음’이 아니라, ‘도시 속’ 복음이라고 정한 이유는 복음이 상황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성경적으로 건전하고, 교리적으로 정확하지만 너무 졸려서 하품만 나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 설교는 무엇 때문에 지겨웠나요? 때로는 설교의 구성요소나 전달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교리적으로 정확하지만 우리 삶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맞는 말씀인 것 같은데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네요. 그런다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가 실제로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듣는 이의 일상과 세계에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며 설교가 지루해집니다. 복음이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사람들의 소망이나 이야기, 두려움, 실수 등에 연결되지 않는 것이죠. 듣는 사람에게 기독교가 진리이기를 바라는 마음조차도 주지 못합니다. 팀 켈러 목사는 이것을 상황화 실패라고 말합니다.

 

각각의 문화는 다음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나름대로 제공합니다. 왜 우리는 여기 있는가? 무엇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인가? 세상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 무엇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그리고 각각의 사회는 최고 가치라고 여기는 것들을 정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과 자원이 그 가치를 섬기도록 유도합니다. 어떤 문화도 이 부분에서 중립적이지 않습니다.[7] 그리고 그 신념은 그리스도인의 신념과 대치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개척하는 교회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화, 그중에서도 대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의 문화 속에 적극적으로 들어가 도시 사람들이 품고 있는 신념을 파악하고, 그 속의 비일관성을 지적하고, 복음이 진정한 희망이 된다는 것을 변증하는 사역을 하고자 ‘도시 속’ 복음이라는 개념을 신학 비전으로 삼았습니다. 이 사역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하신 방식이며, 바울이 전도할 때도 사용한 방법이기에 매우 성경적입니다.

 

2.1.3. 시광교회와 다른 점

 

개척하는 교회는 복음에 대한 정의에서 시광교회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 복음을 현대인의 마음에 다가오도록 제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차별성을 두고자 합니다. 일단 시광교회 기존 두 캠퍼스는 서울 도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역의 주 대상 때문입니다. 교회 이전을 준비할 때 이정규 목사가 쓴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서울의 중심부에는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직업적 안정성을 가진 사람이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는데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어서 정착하려고 기회를 찾아온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도시 중심부의 원룸을 얻어 삽니다. 이들은 대단히 회의적이기에 교회와 복음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고독한 생존경쟁 가운데 공동체적 사랑과 환대를 간절히 바란다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저희는 주로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왔고, 그들에게 복음 중심적이고 변증적으로 접근할 때 생각 이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시광교회는 이러한 세대들을 섬기는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저희 교회는 90-00년대생들을 섬기는 데 열매를 맺었고,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인한 서울의 위기 앞에 이들을 섬기면서 서울 내에서의 대항문화를 가진 공동체를 세워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기쁨으로 섬기려 합니다.[8]

 

실제로 시광교회는 2018년 이후, 이 목표 아래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문래와 신촌 캠퍼스 문화를 주도하는 세대는 청년 2부에 소속된 90년대, 00년대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3년 신촌캠퍼스 개척은 이 사역 초점을 더 강화한 면이 있고, 의미 있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한계도 나타났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장년부 사역의 역동성이 청년부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두 가지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닙니다. 일단 환경 요인이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교회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청년과 같지 않습니다. 더욱이 서울 도심에 살던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도시 외곽으로 이동하게 되고, 도심 속 교회와 물리적 거리도 멀어집니다. 또한 미혼 청년과 기혼 장년은 고독한 생존경쟁 가운데서도 공동체적 사랑과 환대를 간절히 바란다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고독한 생존경쟁의 양상과 공동체적 사랑과 환대에 대한 기대가 다릅니다. 따라서 개척하는 교회는 분투하는 장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에 복음이 와닿기 위한 사역을 더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장년부 사역에만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덕원 교회는 특정 세대보다, 세대 간 소통과 통합을 목표로 합니다. 이 목적은 현재 서울이라는 도시가 겪는 어려움과 관련이 깊습니다. 오늘날 서울에는 세대, 성, 지역, 종교, 정치, 소득 수준 등에 따른 갈등이 뚜렷하고, 이 갈등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서울에는 갈등하는 집단끼리 서로 만나 소통하며 화합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습니다. 이들은 어디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개척하는 교회는 이 문제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물론 시광교회는 이 필요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를 했습니다. (기혼 가정이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행사, 장년과 청년이 더불어 하는 구제 활동, 전교인 수련회 등) 하지만 교회 규모가 커짐에 따라 홍보와 의사소통이 더 어려워졌고, 교인들의 필요가 다양해지면서 이런 시도는 하나의 이벤트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역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죠. 하지만 작은 규모로 시작하는 개척교회는 이 목표를 실현하기에 보다 유리합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2012년 시광교회 청빙 이후 유치부, 초등부, 청년2부, 장년부 사역을 두루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부서 경험으로 세대를 이해하는 감각을 키울 수 있었고, 기존 사역에서도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개척하는 교회에서도 이런 노력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1세기 바울이 세운 교회들에는 오늘날 서울과 같이 다양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갈라디아 지방에 세운 교회들과 에베소 교회 안에는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 갈등이 있었으며, 고린도 교회에는 특정 지도자를 따르는 집단 사이, 또 성별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개인적 갈등으로 주인 빌레몬과 종 오네시모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때마다 복음을 이야기했고, 갈등을 해소하려고 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6~28).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전 3:22~23).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몬 1:16).

 

아직 세대 통합 사역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다. 향후 개척 준비를 하면서 개척팀과 함께 세워나가길 소망합니다. 지금 저는 성도들을 만나 필요를 듣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만난 한 자매는 이미 청년 시절 대학부 목사님과 함께 개척을 했었고,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은 뒤 시광교회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자매는 그 시절 가장 어려웠던 점을 ‘어른의 부재’였다고 말했습니다. 개척과 함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겼고, 목회자도 중심을 잡지 못했을 때, 경건한 어른이 중심을 잡아주셨으면 공동체가 훨씬 안정됐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청년에게는 안정적이고 성숙한 장년이 필요하고, 장년에게는 보다 역동적인 청년들이 필요합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은 곧 자신이 맞을 미래를 살아내는 청년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청년들은 과도한 사역 부담을 지지만, 청년들도 사랑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장년들이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인덕원 교회는 복음이 동력이 되어 서로 차이가 있음에도 서로 필요로 하는 교회를 꿈꿉니다.

 

2.2 복음 중심이 된 공동체

 

2.2.1. 공동체 필요성

 

복음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정체성을 줍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지속적인 복음 선포와 교육에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한계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제프 밴더스텔트는 『복음의 언어』에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가 불신자라는 말은, 우리 삶에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일이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이 하신 일이 충분하다고 온전히 믿지 않는다. 우리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불신자이다.[9]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공동체입니다. 마틴 루터 킹은 당시 흑인을 차별하는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항하며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사회학자 제임스 D. 헌터는 마틴 루터 킹이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흔들림 없이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흑인 교회라는 풍부하고 끈끈한 공동체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윤리 기준을 머리에 채운 것이 아니라, 당대 지배적 가치와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살아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을 빚어낸 것은 명확한 도덕관을 실제로 실천했던 강건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헌터는 이것을 ‘도덕 생태계’라고 말합니다.

 

팀 켈러는 자녀 교육에서 도덕 생태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도덕 생태계는 세상을 창조하신 선하신 하나님이 당신과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도록 우리를 설계하셨고, 우리는 그 설계대로 살아갈 때 최상의 상태가 된다는 도덕적 우주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라는 도덕 지침서를 가지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길 뿐 아니라 이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 우리 ‘손목에’ 그리고 ‘미간에’ 있도록, 늘 우리의 삶을 복음에 비추도록 도덕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이러한 도덕 생태계에서 자라나려면, 이러한 가르침과 가치관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통해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우리가 도덕적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도덕 생태계는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10]


자녀 교육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모지상주의는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까요? 우리는 많은 곳에서 ‘예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해서든 예뻐져야 한다’는 믿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합니다. TV를 켜도, 친구와 대화를 해도, 하다못해 결혼하지 못하는 언니를 봐도, 쉴 틈 없이 이런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점차 신앙으로 강화됩니다. 예뻐지고 싶어서 수술을 받다 목숨을 잃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차별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생겨난다는 소식은 사회의 집단 신념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르치는 신념이 이렇게 강력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듣고, 복음으로 생각하고, 복음으로 말하고, 복음으로 일하고, 복음으로 휴식하고, 복음으로 아이를 키우고, 복음으로 결혼하고, 복음으로 늙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지속적으로 사회 가르침과는 다른 정보를 제공받음으로써, 건강한 세계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사회의 가치관과 다르게 살아갈 용기는, 결국 복음의 가치관에 따라 실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공동체와 함께 얻게 됩니다.

 

2.2.2. 왜 ‘복음 중심’ 공동체인가

 

공동체를 바라는 것은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인간의 공통 특징입니다. 대중매체에서도 공동체는 중요한 주제로 다뤄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공동체성은 자기중심성과 뒤섞여 다른 공동체에 대한 강한 배타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척하는 교회는 단순히 잘 모이는 공동체만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과 다른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인 이유가 복음이어야 합니다.

 

이 공동체 구성원들은 예배와 교육, 교제 때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추악한 죄인이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은 성도들은 죄를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지만 동시에 순종과 율법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듭니다. 경건 생활을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누리는 간증이 흘러나옴으로 사람들을 경건한 삶으로 초대합니다. 경건 생활을 한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고, 못한다고 해서 질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건한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삶으로 상대를 초대하고자 합니다.

 

성도들에게 교회는 단순히 일하는 곳도 아니고, 종교 서비스를 제공해서 이용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듣고 살아내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라 도리어 값없이 베푸신 은혜가 흘러넘치는 곳입니다. 따라서 호의를 베풀거나, 공로를 쌓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할 수 있는 삶 자체를 은혜로 여깁니다. 고난을 당할 때, 그 무게 때문에 힘들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을 위해 고난 당하신 그리스도를 보며 회복의 희망을 품습니다. 공동체는 성도의 고난을 그의 죄의 결과로 여기지 않으며, 동시에 고난을 감내하는 것을 우월한 신앙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일로 여기고 함께 우는 시간을 보내고 복음으로 희망을 품으며 위로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삽니다. 이것이 우리가 개척하는 교회가 품은 신학 비전입니다.

 

이런 교회 공동체는 진리를 굳게 믿고 받아들이지만, 공격적이거나 과격한 질문에 온유하게 답하며, 성경의 가치에 따라 바르게 살아가지만, 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며 환영합니다. 힘을 다해 섬기지만, 자신의 봉사와 섬김을 자랑이나 공로로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 대단히 엄격하지만, 타인에 대해 대단히 너그럽습니다. 종교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거나 감정을 조작하려는 태도가 전혀 없지만 감정이 흘러나옵니다.[11]

 

2.2.3. 시광교회와 같은 점과 다른 점

 

시광교회는 앞서 설명한 ‘복음 중심 공동체’를 꿈꿔오며 지금까지 자라왔습니다. 자신이 가진 자원을 아끼지 않고 섬기는 사랑을 하는 성도들을 보는 것은 목회자로서 큰 기쁨이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고, 부족할 때도 있지만, 복음으로 서로를 독려하고 기어이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뛰었던 적도 많습니다. 앞으로 시광교회 사역도 복음을 공동체 중심에 두려는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장년부 문화의 아쉬운 부분을 말했지만, 시광교회 청년부가 이렇게 역동적으로 성장한 것은 장년부의 성숙한 섬김 덕분이었습니다. 이런 공동체 안에서 생활한 경험이 개척을 하겠다고 용기를 내어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회가 소망하는 공동체는 시광교회 공동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시광교회와 차이가 있다면 규모입니다.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개척교회는 50여 명 내외 교회가 될 것이고, 작은 규모가 더 깊은 공동체성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노력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개척 멤버 중에는 복음을 누리는 동시에, 공동체의 필요를 알고,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여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태어났고, 교회에서 자라났고, 교회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교회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다시 태어났고, 교회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교회가 저의 성품을 만들었습니다. 교만이 자라는 곳이 교회일 때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저의 교만은 말씀과 성도들의 겸손한 사랑으로 죽었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던 저는 이미 받은 사랑이 기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줄 뿐 아니라, 저의 죄와 함께 싸워주는 교회 덕분입니다.

 

소심한 저는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아닙니다. 항상 주저하고 있을 때, 제 마음에서 찾을 수 없던 용기는 항상 교회가 주었습니다. 설교를 끝내고 자책하며 마음이 무너질 때, 등을 두들겨 주며 다시 설교단에 서게 한 것도 교회였습니다. 제가 아파할 때 교회는 함께 아파해줬고, 교회가 아플 때 저도 아팠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에게도 그런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매우 큰 사랑을 받은 저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고자 합니다.

 

2.2.4. 왜 인덕원인가?

 

이 부분에서 개척 장소를 인덕원으로 정한 이유를 말하려고 합니다. 개척하는 교회가 특정 세대에 집중한 사역보다 세대 통합적인 사역을 하기 위해 교회 위치 선정이 중요합니다. 현재 장년부 재적 중 50%가 서울 근교 위성도시에서 삽니다. 개척하는 교회는 장년들이 사는 경기 남부 지역(안양, 광명, 부천, 과천, 성남, 군포, 수원, 용인, 안산 등)을 포괄하는 지역을 선택하려 하고, 인덕원 지역이 중심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청년들이 참여하는 개척을 위해 교통도 중요했습니다. 인덕원은 4호선 전철이 있어서 서울에 사는 청년들도 비교적 편하게 올수 있는 지역이라 판단했습니다. 시광교회 도시 선교 사역의 연속성을 위해 대도시적인 특성을 지니는 지역을 선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인덕원 지역의 서편은 평촌지역으로 안양시 문화 중심지입니다. 북편은 유입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과천지역으로 점차 대도시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덕원은 서울 근교에 있다는 특성으로 오랜 시간 정착하여 사는 장년 뿐 아니라, 서울로 출근하는 30~40대 신혼부부들이 많습니다. 평촌 지역의 회사와 몇몇 대학으로 청년들도 거주합니다. 무엇보다 서울 근교에서 교육열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청소년들과 청소년들을 키우는 장년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이러한 지역 특성은 개척하는 교회가 앞서 언급한 세대 통합적인 사역을 펼치는데 주요한 장점이 될 것입니다.

 

2.3 공동체가 섬기는 도시

 

2.3.1. 시광교회와 같은 점

 

앞서 설명한 복음 중심 문화가 있는 공동체는 도시가 보기에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섬기는 기회를 얻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 사랑으로 변화된 공동체가 세상에 영향을 준다는 구절이 있습니다(창 12:2; 마 5:16; 요 13:35). 따라서 도시에 세워진 교회는 도시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시광교회는 2023년 신촌캠퍼스 개척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도시 선교 사역을 했습니다. 도시 ‘전도’가 아니라, 도시 ‘선교’로 정한 이유는 대도시의 특성 때문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떠올리는 선교는 다른 국가에 가서 그 지역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들 ‘전도’와 ‘선교’의 차이를 대상 지역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이 아닙니다. ‘다른 문화’입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단순히 사람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인구 밀도가 너무나 높으니, 좁은 공간에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사역을 ‘선교’라고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도시 선교는 결국 대도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에 맞추어 도시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 목표 아래 시광교회는 교회를 개척했고, 도시 안에 비신자에게 복음을 변증하는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광교회는 서울을 사랑하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서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정서적,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기독교에 회의적이지만, 그럼에도 기독교를 궁금해하는 서울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를 대상으로 설교하고, 대화하고, 모이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비신자들이 언제든 기독교에 대해 회의적인 질문을 할 때 따뜻하고 사려 깊은 대답을 들을 수 있고, 다양한 생각을 존중받을 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자 애썼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기존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하나님을 오해했던 분들을 위해 시광교회는 복음을 통해 오해를 풀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는 사역을 계속해왔습니다.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사역이 가장 힘 있게 작용하는 방법이 지속적인 교회 개척이라고 믿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도시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따라서 한 교회가 다 감당할 수 없는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각각의 문화에 제대로 반응하고, 각각의 필요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교회 개척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지금까지 시광교회에서 맺었던 열매가 영향력 있게 다른 지역으로 퍼지길 소망합니다. 시광교회 주된 관심사는 대형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섬기는 운동이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 하나보다 수도권 전역에 좋은 교회가 다수 생기는 것이 도시를 섬기는 것에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인덕원 교회도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12]

 

2.3.2. 시광교회와 다른 점

 

개척하는 교회는 시광교회 도시 선교 사역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인덕원 교회는 조금 더 지역성을 띤 방식으로 도시를 섬기려고 합니다. 교통 발달로 교회가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데 예전만큼이나 지역성이 절대적이진 않지만, 여전히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는 공동체성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도시를 섬긴다고 했을 때, 교회 인근 지역을 어떻게 섬기는지도 중요합니다. 기존 시광교회가 서울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도시 선교 사역을 했다면, 개척하는 교회는 조금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해당 지역을 섬길 계획입니다.

 

따라서 개척하는 교회는 지역 사회를 연구하여 지역 주민들 생활을 이해하고, 그분들의 필요를 찾아 교회가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을 고민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도시선교 위원회를 조직하여 지역을 조사하고, 조사에 따른 선교 계획 등을 구체화하려고 합니다.

 

2.4 최고 목적, 삼위 하나님을 예배

 

복음, 공동체, 도시가 모두 중요하지만 이것이 개척하는 교회의 최고 목적은 아닙니다. 세 가지 키워드는 모두 종속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상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추구하는 목적이라 할 수 있죠. 최고 목적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정의에 따르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며, 행위자에 의해서 최고로 추구되는 것입니다.”[13] 개척교회가 최고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 목표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알려줍니다.

 

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1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최고 목적, 수단이 되지 않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개척하는 교회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예배하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그 예배 대상이 하나님이 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입니다. 개척하는 교회는 항시 이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사역을 해나가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도시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돕고 있는가?”

 

3. 마치며

 

교회 개척을 앞둔 저는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어지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글을 다 쓰고 난 뒤 다시 읽으며, 한편으로 거창하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한 건 글을 읽고, 이런 교회를 세워가는 데 마음을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함께 고민해 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도시 속 복음’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반영하는 비전입니다. 그리스도는 친히 도시(우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기에 앞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찾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도시 속에 있습니다. ‘복음 중심 공동체’ 역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반영하는 비전입니다. 그리스도는 기꺼이 우리와 공동체가 되어주셨습니다. ‘공동체가 섬기는 도시’ 역시 우리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이 반영된 섬김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을 하신 최상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4~6)

 

두려움과 기대로 마음이 혼란할 때, 저는 항상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용기를 내주십시오.



1. 팀 켈러, 『센터 처치』 오종향 옮김 (서울: 두란노, 2016), p. 23.

2. 위의 책, pp. 29~30.

3. 위의 책, p. 28.

4. 이정규, <시광교회 비전선언문>, 2025년 1월 13일자.

5. 브라이언 채플, 『은혜가 이끄는 삶』 황을호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7), pp. 56~57.

6. 팀 켈러, p. 107.

7. 위의 책, p. 229.

8. 이정규, <공간 사용과 관련하여 총신대 교직원분들께>, 2024년 3월 27일자 서신.

9. 제프 밴더스텔트, 『복음의 언어』 장성은 옮김 (서울: 토기장이, 2018), pp. 28~29.

10. 팀 켈러, 『태어남에 관하여』 윤종석 옮김 (서울: 두란노, 2020).

11. 이정규, <제자훈련 4단계 사역훈련: 7. 공동체와 전도문화> 교재.

12. 이정규, <시광 비전선언문>, 2025년 1월 13일자. 

13. 조나단 에드워즈, 존 파이퍼 공저, 『존 파이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백금산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3),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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